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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께 드리는 글
 
흡선치유닷컴 기사입력 2019/06/21 [16:40] 조회 315

생체실험은 창시자만이 행한 것이 아니었다. 
현대의학으로부터 소외된 수많은 병자들은 창시자의 꾸밈과 가식이 없는 성품에 감화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곧고 강직하면서도 미사여구를 좋아하지 않는 무뚝뚝함 속에서도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찾아내자 신뢰를 넘어 각자의 몸에 생체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필자 역시 창시자를 처음 만났을 때, 고혈압, 심장병, 당뇨를 동시에 앓고 있었으나, 단 한번 친견하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충만했다.  부산으로 내려와 그가 시범을 보여준 대로 곧바로 100여개의 부항기(이후 흡선기라 칭한다)를 목, 등 전체와 골반, 옆구리까지 덮어버렸다.  온몸은 곤충채집을 당한 것처럼 꼼짝도 못하고 굳어버렸다.


1단계 속치법 30여 차례의 치료에서는 초기 3회 차를 제외한 매번의 시술에서 컵 가득 매케한 냄새를 풍기는 미지근한 온도의 이물질들이 고여나왔고 선지와 같은 묵덩어리가 탄력성을 지닌 채 휴지에 묻어져 나왔을 때 나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전율했다. 
2단계 치료가 마무리 될 즈음에 나는 이미 나비처럼 가벼워져 있었고, 시커멓던 얼굴과 그늘졌던 눈 밑 다크서클 부위는 동안(童顔)처럼 살색이 뽀얗게 번졌는데, 혈당와 고혈압의 수치를 그나마 경계치로 돌려놓을 수 있었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가슴으로만 숨을 할딱 거리던 협심증 증세는 뱃속깊이 들숨이 가능해졌고 달리기를 해도 아무런 심장 저항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소멸되었다. 무엇보다도 평생을 먹어야 한다던 하루 16알의 화학약 처방으로부터의 해방은 내 인생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3단계 국소요법 치료를 끝냈던 날, 새로 태어난 첫 생(生)의 새벽에, 나는 문득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이 희열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그 날의 새벽에, 이 의료혁명을, 이 세상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말ʼ 이라는 헛된 에너지로 누구에겐가 공허하게 발산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생각의 여유도 필요치 않았다. 주저할 바 없이 생각을 풀어헤치자 묻어 두었던 비애(悲哀)가 10일 밤낮을 두견새 울듯 절절히 묻어나왔다. 강물같은 눈물이었다.

스승님께 


새벽은 소리 없는 개벽과도 같습니다. 

어둠을 서서히 몰아내는 광명의 빛은 언제나 저를 경건하게 만들고, 항상 지치지 않는 새로움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요즘의 새벽은 사뭇 여느 때와는 다릅니다. 선생님을 만나기 몇 달 전부터 저는 전통의학에 관한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탐독해 오고 있었는데, 우연히 서점에서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의서를 접하는 순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서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놀라움과 흥분 속에서 꼬박 밤을 새고, 몇 번이고 탐독하며 맞이하던 그 새벽들을 잊지 못합니다.   

 쉽고,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만병의 근원을 발본색원하는 그 논리 앞에 가슴 떨리는 감동을 간직하며, 선생님의 의서가 가르치는대로 제 몸에 생체실험을 결행코자 다짐하던 그날의 새벽이 저에게는 어찌 개벽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몸을 잘 가누지 못한 상태도 아닌 비교적 건강 체질이던 제가 깊이 병이들어 현대의학으로 어찌할 수 없게되자 선생님의 의술로 생체실험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쓰러짐에 대한 공포, 그리고 분노ʼ 때문입니다.   

제 중학교 시절에 부친은 고혈압과 당뇨 합병증이 원인이 되어 중풍을 맞게되고 55세에 세상을 하직하시기 전까지, 7년의 세월을 어머니와 함께 대소변 수발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쾌유하시기를 빌었던 그 적지 않은 세월은 우리 가족에게는 큰 시련이었고 얼마 되지 않는 가산마저도 탕진하는 위기의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43세 되던 해에 하나뿐인 형님마저도 만성천식으로 인해 기도확장제에 의지하고 살았으나, 산행에서 돌아오는 어느날 기도가 막혀 호흡이 정지되는데도 약의 내성으로 인해더 이상 약효가 듣질 않아 길막힌 고속도로에서 졸지에 급사하고 말았으니 제게 어찌 천추의 한이 없겠습니까?   

저는 이 ‛쓰러짐에 대한 공포ʼ를 잘 압니다.
한순간 모든 가족의 희망이 물거품이 되고, 길고 지루한 사투가 힘겹게 시작되는 그 충격을 이제는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 다가올지도 모르는 비수를 등에 지고서 어찌 불안한 삶을 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도무지 방도가 없는 예견치 못하는 죽음의 그림자에게 더 이상 제 가족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분노ʼ 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서양의학이 절대로 고치지 못하는 성인병에 대해 의사들은 아직도 ‟우리는 정말 자신이 없다"라고 고백하지 않고 있습니다. 병이 생기고 나서야 증세만을 붙잡고 늘어질 뿐, 원인치료에는 근처도 못갑니다. 제 아버지의 병이 고혈압일 때 제대로 원인치료를 했더라면 중풍 따위로 쓰러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혈압 치료에는 혈관을 확장하는 약과, 아니면 심장의 펌프질을 약하게 마취하는 혈압강하제가 전부입니다. 혈관의 흐름을 억제하고 있는 어혈(피떡, 혹은 혈전이라고도 합니다.)이나 노폐물이 몸 전체로 퍼져 있는 모세혈관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고 있는 핏줄입니다.) 어딘가를 막아, 피의 흐름을 억제하여 그 압력이 팽창되고 있는데 혈관을 확장하는 응급성 대증치료(對症治療)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까?   
 
노폐물은 유속의 흐름이 약한 강바닥에 자갈 쌓이듯 쌓여만 가서, 마침내 굵은 혈관까지 막힘이 진행되고 결국 감당이 되지 않을 터, 혈관을 언제까지 풍선처럼 계속 팽창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다가 혈관의 내벽이 얇은 부위가 터져버리면 뇌출혈이고, 심장혈관이 막히면 심근경색이니, 혈관을 확장하고 스탠스를 박아넣고 혈관을 잘라 잇는 것이 치료의 전부가 아닙니까?   이게 무슨 치료입니까?

 심장은 24시간 박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모세혈관 구석구석까지 피가 골고루 도달하여 체세포에게 영양분을 고르게 공급하는 일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장이 해야 할 일은 더욱 바빠져서 펌프질은 자연히 빨라지는 것이지요.   펌프질을 약하게 하기 위한 양의 처방은 심장박동수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마취제를 투약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심장주위에 있는 신장이나 위장, 간 할 것 없이 주위 모든 장기 역시 마취의 영향으로 정상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식인데, 평생을 먹어야 하는 이 ‛화학약ʼ 들이 평생 동안 장기들을 마취시키고 있는데도, 이게 과연 병자의 몸을 살리는 약인지 아니면 병자의 몸을 오히려 해치는 ‛독'인지, 대한민국 의사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치료처방을 하기 전에 ‟고혈압 환자님들, 급살을 막기 위한 증상을 완화시킬 뿐, 원인치료는 할 수가 없어 정말 송구합니다. 저희가 처방하는 약은 당장 생명을 구하는 응급처방으로서는 뛰어날지 모르나, 장복하시면 간도 신장도 정상 활동을 할 수가 없어 이뇨작용에 문제를 일으키고 요산수치가 증가하고 간 기능 역시 부실을 초래하여 해독작용을 할 수가 없어 나중에는 중병이 들게 됩니다, 그래도 치료하시겠습니까?"라는 사전 고지의 의무를 의사의 양심으로서 성실히 이행한다면 아마도 대한민국 병원의 절반은 수개월도 못가서 당장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고혈압 환자 모두는 의사들의 고지의무 불이행으로 인해 마침내 뇌, 심장, 신장 등의 주요장기에 중병이 들고야 마는 피해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민법에서 정하는 대로 고지의무 불이행의 죄를 물어 준엄한 의료심판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피의 흐름이 억제되는 그 자체가 고혈압이고, 그 부위가 심장에 정체되어 있으면 협심증, 완전히 막히면 심근경색이고, 혈관확장제를 장복하다가 노화된 혈관이 확장을 견디지 못하고 뇌에서 터지면 뇌출혈, 뇌에서 막히면 뇌경색이 아닙니까?  


간단한 이치입니다.  
인체 내 장기와 체세포 곳곳에 흡착되어 있는 노폐물을 제거하여 피를 맑게 하면 될 일을 왜 이렇게 증상별로 이름을 복잡하게 붙여놓고 각각의 증상에 따른 약을 별도로 처방하여, 제가 왜 평생 동안 16개씩의 화학 약을 매일 입속에 털어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이들의 지각없는 행동은 이제 극에 달하여 인구는 줄어드는데도 곳곳에 대형병원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응급처방으로 밖에 효능이 없는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고의로 환자를 기망하고 막대한 의료비 지출을 부담하게 한 죄!, 이 기막힌 모순과 기만과 당착 앞에서 저 같은 민초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선생님, 재미도 없는 이야기가 길어진 것 같습니다.   
 온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모처럼 이렇게 장문을 쓰다 보니 피로가 몰려옵니다. 그러나 육신의 피로를 정신의 건강으로 버텨보니 세상은 오히려 맑게 보입니다. 선생님 같은 명의를 진작에 만났더라면 아버지와 형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는 눈물겨운 회한이 가슴을 쓰리게 만듭니다.   

 제 생체실험에 대해서는 다음 서신 때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로 하고 우선 금일소식 전합니다. 심장을 위협하던 협심증 증세는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열 번도 더 쉬어야 오를 수 있었던 대구 팔공산 산행도 이제는 쉼 없이 단번에 올라버립니다.   30년 동안을 견비통으로 고생했는데 극심하던 어깨 결림이 서서히 사라지는가 싶더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통증이 번갈아 옮겨 다니며 벌레를 수백마리 풀어놓은듯 극심한 가려움증현상이 양 어깨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서에서 말씀하신 명현반응일 것입니다. 흡선기를 해당부위 양쪽에 재차 시술해 두었더니 또 수포가 염치없이 솟구칩니다. 이제는 아예 새까맣습니다. 보기에도 흉합니다. 이제는 온몸 구석구석 수포가 안 나오는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혈압은 170대를 웃돌던 것이 140대로 내려갔습니다.   
 
노폐물이 큰 젤 형태로 퍽퍽 거리며 다 나오고 나면 10분도 안되어 딱지가 형성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현대의학의 치료개념으로 접근하자면 노폐물을 뽑아낸 온몸의 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감염예방 위해 수포를 절대 터트려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며 이름 모를 연고를 듬뿍 바를 것이며 항생제 주사를 놓을 것이며 진통제와 소염제 처방을 할 것이요 온 몸을 붕대로 감아버리고선 두 달정도 입원을 시킬겁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모르고 있는 엄연한 사실에 대해 그들은 ‛모른다ʼ 가 아니라 항상 ‛아니다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온몸에 샛노란 독수가 아무리 많이 흘러내려도 스스로 치유되는 인체의 원리를 ‛모르는ʼ 처방이지요. 얼마나 독성이 강한 노폐물인지 염증을 유발하는 다른 세균에 감염될 우려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아예 모르질 않습니까?  그 수많은 상처는 딱지로 진화하여 저절로 아물어 제 몸에서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의학과 저와의 아프고도 질겼던 모진 인연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쾌감을 느낍니다.  


선생님, 
찬물에 밥 말아 김치 한 보시기만 먹어도 정신은 신선한 포만감으로 새로 태어나고 있는 느낌입니다. 현대의학과 등진다한들 오늘도 저 개벽의 새벽 해가 저를 비추고 있는 한 무서울 게 없습니다. 길은 잠들지 않고 걷는 자만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병원이 문을 닫아야만 환자 수가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누군가의 역설이 호되게 뒷머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상큼한 새벽입니다.  

부디 언제나 건강하세요.  
 
이렇게 창시자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이 스승과 제자라는 숙명의 끈이 되었다.



기사입력: 2019/06/21 [16:40]  최종편집: ⓒ 흡선치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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