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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천 선생은 누구인가?
 
이현기 기자 기사입력 2012/05/20 [10:55] 조회 8488

▲ 강봉천선생 근영

 민족고유 의술인 ‛흡각요법ʼ 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시자 강봉천 옹이 누구인지를 조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물주가 성인 내장 경‧중증을 치료하라고 숨겨 놓은 비책(秘策)은 바로 한선(汗腺)이다. 인류는 아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나는 이를 내 몸에 생체실험을 함으로써 알아내었다.ˮ 
 
그가 창시한 흡각요법으로 수천 명의 난치병 환자들이 완치되었다는 기가 막힌 대 발견!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벨의학상을 열 번 주어도 아깝지 않을 인류 역사에 기록될 대 경사(慶事)입니다. 정부가, 의사들이, 한의사들이 애써 외면하려 할 뿐, 이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순천의 박병준 한의학 박사는 그의 저서 '내안의 의사가 진짜의사'에서 밝히기를, 자신의 속발성 알러지가 도질 때는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버리는 고질병을 앓아오다가 흡선치유로 완치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올해 81세의 고령임에도 60대의 건장한 기골과 우렁찬 목소리에 말에는 미사여구가 없고 성품이 강직하고 대쪽 같으나 마음은 항상 다정하고 따뜻한 성정을 가진 분이라,  수천 명의 병자를 낫게 하고도 노부부가 함께 거주하는 곳은 서울 상도동 15평 임대아파트로 종이 한 장도 헛되이 쓰지 않는 청빈한 생활로 일관해 오셨습니다.

 1926년에 경남 진양군 이반성면 가산리 증촌 812번지에서 출생, 해방 후 국방 경비대에 입대 복무 중 6·25전쟁을 겪었고, 1954년 만기제대 후 건축부문에서 일하며 생활하시다가, 1985년부터 추간판 헤르니아 일명 디스크로 인한 좌골신경통으로 보행마저 불가능한 상황에 이릅니다. 
 
한의학과 서양의학 그리고 전통의술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난치병을 치료하고자 갖은 고초를 겪었으나 뚜렷한 방도를 찾지 못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운명에 처한 그가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기가 막힌 치료법인 흡각요법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인류 최초의 획기적인 의술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조상대대로 내려 온 기존의 부항요법은 한 번에 5~10분만에 부항기를 떼어내는 치료법으로서 장시간 진공음압이 인체에 가해지는 영향을 두려워한 탓에 성인병 근본치료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부항시술법인 사혈요법의 경우에는 혈관을 침으로 쫏아 생혈손실이라는 한계로 인해 체내 깊숙이 장기에 흡착되어 있는 노폐물을 흡출해 낼 만큼의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 못한 시술법입니다.

둘째, 이보다 한 단계 발전시켜 성인병 치료에 근접한 김형렬 선생은 과감하게 환부에 60분가량 부항기를 부착하는 부항발포요법을 개발하여, 인체 내의 ‛독소ʼ 배출에 성공함으로써 혁신적인 치료법으로서의 장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치료에 부항기를 3~5개 이상을 초과해서는 안된다.ˮ 며, 혈자리에 국한된 치료법으로 규정하여 스스로의 의술에 족쇄를 채웠습니다. 

김형렬 선생은 또한 그러한 시술 도중 인체에 유익한 체액마저 독소와 함께 뽑혀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며 오히려 병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잇었던 것같습니다. 인간의 건강은 4가지 체액들의 균형으로 유지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체액설이라는 절대적 권위 앞에 어쩔 수 없이 한번 치료에 부항기 3~5개 이상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추론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추론은 의문을 낳습니다. 이를 입증코자 새로운 도전이 이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누워서 죽을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초라한 노인에게는 오히려 죽음을 각오한 도전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형렬발포요법을 마지막 희망으로 삼았던 그 당시를 그는 저서<흡각요법으로 만병을 다스린다>에서 이렇게 회고합니다. 
‟…(치료에 실패한 나는) 다시 발포법을 세밀히 살펴보아도 특이한 방법은 없고, 발포법 그대로 뿐이었다. 이때, 나는 (발포요법이) 부분치료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제서야 확실히 알았다… 부분적 치료로는 내장전부가 중병이 든 경우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ˮ 
 
형중(亨中)선생은 생체실험에 돌입했습니다.

한번에 3~5개로는 자신의 병의 낫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그는 등전체에다 60여개의 부항기로 강압을 걸어버리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병자인 나 자신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모든 의술이 포기한 병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살만큼 살아 본 목숨. 이대로 구차한 삶을 지탱하다가는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유마저도 박탈당할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3일째 치료, 40분 이상 경과되었는데 불그스레한 액체가 한 컵씩 꽉꽉 차게 나온 것이다. 이렿게 액체가 많이 나오면 죽지 않을까 라는 공포심도 생겼다...인체에서 유익한 액체마저 조금이라도 빨려나간다면 내 몸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날 텐데…ˮ 
 
치료과정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심에 시달려야했던 창시자 스스로의 생체실험은 상상을 뛰어넘는 초인적인 역발상이었습니다. 기존 정형외과 의학이 바라보는 관점, 즉, 척추통증의 원인이 신체구조의 이상에 있다든지, 척추의 퇴행변화 때문이라든지, 허리가 근본적으로 나쁘기 때문에 요통과 좌골신경통이 생긴다는 기존 상식의 틀을 뛰어 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의학이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했던 이 외로운 촌부의 생명을 건 마지막 도전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거나 지켜보지도 않았습니다. 무모한 치료행위라며 차라리 애써 외면하려 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기사입력: 2012/05/20 [10:55]  최종편집: ⓒ 흡선치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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